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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여행 1일차

배우는키친 2024. 3. 7. 20:44

 

나는 한번씩 충동적인 사람이 된다. 참고 미뤄두던 것을 이제 터트릴 때가 왔다고 느낄 때 그렇다. 바로 얼마 전, 몇 년 만에 그런 충동을 느낀 나는 썩 고민할 새도 없이 비행기표를 예약해버렸다. 목적지는 제주도. 남들 일할 때 떠나는 나의 4박 5일. 아무 계획없이 숙소도 예약했다. 거창하지 않은 여행이 될 것이다. 그동안 쓰지 않았던 글도 쓰고 커피도 마시고 바다도 보고 자전거도 타고 그저 그러다 와야지.

 

내게 여행은 멀리 떠나는 것이 중요하지 무엇을 하느냐는 그다지 중요치 않다. 어디론가 훌쩍 떠난다는 설렘만으로도 지난 몇 주간 밤잠을 이루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이번엔 인생 첫 나홀로 여행이다. 무엇을 하든 무엇을 보든 무엇을 먹든 뭐든지 내 마음대로! 자취도 해본적이 없는 나로서는 정말로 이번 여행이 기대되었다. 오롯이 혼자가 되어보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일까. 처음으로 온전히 혼자가 되기 위하여 그렇게 충동적으로 하늘을 날아 떠나기로 했다.

 

공항에 도착해 탑승권을 뽑고 저녁을 먹었다. 이상한 일이다. 사진은 분명 맛있어 보였는데 살면서 먹어본 것 중에 가장 맛없는 돈까스가 나왔다. 뭔가 불길한 전조인가? 나만의 징크스가 떠올랐다. 설레발칠수록 뭔가 잘 안 됐었지. 약간의 불안감이 생겨나자 기분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돈까스를 반절 이상 남기고 유튜브로 시간을 떼우며 조금 시시하단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떠나면서도 나는 유튜브나 보는건가. 바보같단 생각을 하며 남은 돈까스를 뒤적이는데 문득 중요한 것이 생각났다. 아, 제주공항에서 숙소까진 어떻게 가더라?

 

어떻게 그걸 까먹을 수 있지? 바보같이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길을 한번도 검색해보지 않았다. 부랴부랴 지도어플을 켠 나는 이내 절망에 빠졌다. 공항에서 숙소까지는 버스를 갈아타면서 2시간은 가야하는 거리였다. 아뿔싸, 어떡하지? 버스를 타는 것은 상관없지만 캐리어가 문제였다. 과연 내가 저걸 들고 버스로 이동할 수 있을까? 택시도 검색하고 렌트카도 찾아봤지만 이미 너무 충동적이었던 이 여행에서 경비로 부담하기엔 큰 금액이었다. 아, 이래서 계획을 잘 짜야하는건데...! 그 와중에 휴대폰 배터리가 다 닳아가고 탑승시간이 다가왔다. 휴대폰을 충전할 시간도 없었다. 결국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 한 채로 비행기에 올라야했다. 나홀로 여행이 처음이라 너무 들뜨기만 했었나, 스스로 바보같이 느껴져 기분이 더욱 가라앉았다. 이렇게 엉망진창인 기분으로 여행을 시작하게 되는건가?

 

다행히도 기분은 금세 좋아졌다. 비행기가 움직이고 날아오르기 시작하자 마음도 붕 뜨는 것이 느껴졌다. 난다는 것은 참 대단하다. 처음 나는 것에 성공한 사람은 얼마나 행복했을까? 비행기는 몇 번을 타도 날아오르는 그 순간에 설레게 된다. 중력조차 거스르며 일상을 벗어나는 일이기에. 그래, 버스 2시간 쯤이야 뭐 어때? 저 커다란 캐리어가 뭐 어때서? 지금 이 순간 이렇게 깃털 하나없이 날아올라 낯선 곳으로 떠나고 있는데 무엇이 걱정이란 말인가. 창문 너머로 세상이 작아지고, 도시의 불빛이 별자리를 그린다. 평소보다 조금 더 가까운 곳에 달이 덩그러니 떠오른다. 운 좋게도 꽉 차오른 동그란 달. 그러고보니 밤 비행기는 처음이다. 여기저기서 카메라 셔터음이 울렸다. 음, 나처럼 새삼스레 감동하는 촌스러운 사람이 여럿 있나 보군. 순식간에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이렇게 별거 아닌 일에 가라앉지 말자. 나는 좋은 여행을 할 수 있을거야.

 

2시간이 걸려 도착한 숙소는 무척 아름다웠다. 밤에 도착해서 이런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거겠지? 새카만 밤하늘 아래 반짝반짝 빛나는 조명들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플레이스 캠프 제주. 내가 이 곳을 숙소로 고른 이유는 편의시설이 많고 여행객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많기 때문이다. 계획없이 떠나온 내게 딱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내일은 이곳에서 자전거를 빌려 해안선을 따라 달려볼까. 조금 추우려나? 산책하는 프로그램도 있던데, 가이드의 안내를 따라 조금 축축한 숲길을 걷는 것도 좋을 것이다. 밤늦게 도착했지만 내일에 대한 기대로 발걸음에 힘이 실린다. 이런 기분을 얼마만에 느껴보는지. 항상 내일을 기대하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조그맣고 심플한 방엔 나처럼 홀로인 사람이 vr을 보며 목욕을 즐기는 그림이 걸려있다. 4박 5일간 나의 방이 되어줄 조그만 공간. 이미 자정이 지났지만 설레고 좋은 기분을 표출하지 않고는 잠들 수 없을 것 같아. 태블릿을 꺼내 일기를 쓴다. 내일은 어떤 내용으로 일기를 쓰게 될까? 어서 아침이 오면 좋겠다.